'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 모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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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6월 5일 바둑판 처럼 농경지가 정리된 금릉군(현 김천시) 농소면 신촌리 신촌평야. '약진경북' 계획에 따른 도내 경지정리 사업 완공 제1호다. 당시 매일신문 취재용 경비행기(L-16)에서 촬영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기상(機上)에서 내려다 본 지상은 흡사 바둑판 같기도하고, 선 굵은 남자의 샤쓰(남방)무늬 같기도하다…."

1964년 6월 5일, 마침내 금릉군(현 김천시) 농소면 신촌평야 경지정리 사업이 준공을 봤습니다.
착공(3월 31일) 2개월 여만의 성과.

'약진경북' 계획에 따른 경지정리 사업 완공 제1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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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6월 5일 농경지가 정리된 금릉군(현 김천시) 농소면 신촌리 신촌평야에서 농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약진경북' 계획에 따른 도내 경지정리 사업 완공 제1호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식량증산을 위한 경지정리는 다단계식 개간보다 더 절실했습니다.
시·군·읍·면별 1개소씩 도내 247개 지구에서 일제히 깃발을 올렸습니다.

우선 대상은 1모작 저습지.

측량과 설계가 끝나면 몽리민이 직접 팔을 걷었습니다.
힘이 부치는 작업은 군 부대의 불도저, 토운차(土運車)가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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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6월 경지정리 전 금릉군 아포면(현 김천시 아포읍) 봉산리, 의리 일대 굴곡진 농경지. 감천이 수시로 범람해 농사를 망치곤 했던 상습 침수지였다. 사진 아래 신작로는 현재의 아포대로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면적은 83정보 5반(약 25만 평).
군비 44만 4천원, 몽리민(蒙利民·지주) 노력 부담 95만 9천원이 투입됐습니다.

굴곡진 농토는 네모반듯해지고 종횡으로 5.4km에 수로와 농로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2모작지가 3배 늘어, 쌀과 보리 등 1천1백42섬을 더 증수하게 됐습니다.

(1964년 6월 7일자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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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지정리 현장 시찰 차 열차편으로 김천역에 도착해 김인 경북지사와 함께 역 플랫폼을 걸어 나오고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눈이 휘둥그레진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경북도를 '경지정리 시범도'로 정하고,
그해 2월 전국 지방장관(도지사)을 김천으로 싹 불러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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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박정희 대통령 일행이 경지정리 현장 시찰차 김천 시청을 방문하자 환영 나온 주민들이 시청 정문 앞에 가득 모여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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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김천 시청에서 김인 경북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전국 지방장관(도지사), 취재진에게 경지정리 현황 등 '약진경북' 계획을 브리핑 하고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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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김무연 금릉(현 김천시)군수가 조마면 신안리 경지정리 현장에서 시찰 나온 박정희 대통령 일행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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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금릉군(현 김천시) 조마면 경지정리 시찰 현장에서 김인 경북지사가 저습지의 앙상한 벼뿌리와 경지정리 후 자란 두툼한 벼뿌리를 보이며 "벼도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마셔야지 노상(매일) 물에 담궈두면 잘 크지않습니다" 고 하자 박 대통령 일행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시찰 현장엔 저습지 물구덩이서 자란 앙상한 벼뿌리와 경지정리 후 자란 두툼한 벼뿌리가 놓였습니다.

"벼도 물을 마시고 싶을 때 마셔야지 노상(매일) 물에 담궈두면 잘 크지 않습니다."

김인 경북지사가 이렇게 너스레를 떨자 시종 말이 없던 박 대통령은 그제서야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1965년 2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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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2월 12일 금릉(현 김천시)군 조마면 신안리 경지정리 현장에 시찰 나온 박정희(가운데) 대통령, 정일권(왼쪽) 총리, 김인(오른쪽) 경북지사.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다음날, 경북 도청에서 열린 지방장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이렇게 훈시했습니다.

"금년에 중점으로 추진해야 할 일 한가지는 경지정리 사업.
경북의 예를 본보기로 전국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경지정리 사업은 그해 식량증산 7개년 계획에 올라타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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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농소면 신촌리 신촌평야(위)의 2024년 현재 모습(아래). 경부고속도로(1970년 완공) 사이로 시설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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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농소면 신촌리 신촌평야(위)의 2024년 현재 모습(아래). 경부고속도로와 동김천 IC 사이로 시설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60년 만에 다시 찾은 김천 들녘.
선 굵은 남자의 샤쓰 같은 들판은 여전한데 고속도로 사이로 시설하우스가 꽉 들어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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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아포읍 봉산리,의리 일대 농경지(왼쪽)의 2024년 현재 모습(오른쪽). 맨 아래 아포대로 옆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그때 배고픈 고통을 지금 사람들은 몰라요"
"그 흔한 쑥도 씨가 말라 쑥 뜯으러 20리길을 댕겨 온 적도 있어요."
"경지정리 하고나서, 통일벼 심고부터 끼니 걱정을 면했어요…."


평생 고향 농토를 지켜 온 아포읍 제석1리 김정수(90), 김태문(75)씨.
옛 사진을 내 밀자 맨입으로 보릿고개를 넘던 한 많은 세월을 줄줄 토해냅니다.

식량증산 ②
1964년 김천 경지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