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65년 2월 12일자 매일신문에 '일목정연한 다단계식 개간지' 라는설명과 함께 게재된 사진. 촌로가 분뇨 거름을 뿌리며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1964년 '약진경북' 계획에 따라 야산을 계단식으로 일군 비탈밭으로, 위치는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산 58-11 일대로 확인됐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미류나무 늘어선 신작로 옆으로 까마득한 비탈밭.
저 높은 산 허리까지 살뜰이도 일궜습니다.
망건 쓴 촌로가 분뇨 거름을 내는 여긴 어디며, 무슨 사연으로 이 험한 산중에 터를 잡았을까요?

▲ 1965년 2월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산 58-11 일대가 다단계식 농지로 탈바꿈한 가운데 촌로가 진보장에서 송아지를 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기약 없이 또 신문을 훑었습니다.
"남한 인구는 2천6백48만명.
식량은 연 3천8백58만석이 필요한데 생산량은 2천4백47만석뿐.
천4백11만석이 부족하다.
해방 후 18년 동안 주력해온 중농정책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1964년 6월 19일자 매일신문)

▲ 1965년 2월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산 58-11 일대가 다단계식 농지로 탈바꿈한 가운데 촌로가 진보장에서 송아지를 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원조로 보릿고개를 넘던 이 무렵, 식량 증산만이 살길이었습니다.
정부는 농업근대화, 경북에선 1964년 '약진경북(躍進慶北)'을 내걸었습니다.
핵심 과제는 경지확장과 경지정리.
농토를 넓히고 면적 당 생산량을 높여 증산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