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 모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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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년 2월 17일 대구 동구 신암동 230번지 부근에서 촬영한 동대구역사 건설 예정지(오른쪽 철길 경부선과 대구선 합류지). 철길 왼편 언덕에는 현재 덕성초교가 들어섰으며 오른쪽 구릉지는 주택가로 변한 신천동과 효목동이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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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25일 취재용 경비행기에서 본 동대구역사 건설 현장. '대대구 건설' 일환으로 동대구 개발 거점인 동대구역 공사와 함께 신천동(왼쪽),신암동(오른쪽) 일대에 신도시 개발을 위한 구획정리가 한창이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현 역사(驛舍) 동대구로 이전"
1967년 11월 12일, 극비의 '대대구 건설' 청사진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핵심은 1968년 말 준공 목표로,
화물역으로 건설중인 동대구역을 여객전용으로 바꾼다는 것.

이에 따라 1969년 새해부터는 동대구역에서 여객업무를 보고,
대구역은 화물만 취급하다 평리동에 화물 전용역 신설 후 아예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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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25일 취재용 경비행기에서 본 동대구역사 건설 현장. '대대구 건설' 일환으로 동대구 개발 거점인 동대구역 공사와 함께 신천동(왼쪽),신암동(오른쪽) 일대에 신도시 개발을 위한 구획정리가 한창이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철도는 남북 분할, 신천은 동서 분할'.

여객용 동대구역 건설은 대구 시가를 동쪽으로 확장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인구는 느는데 도심은 비좁아 중앙통(로)을 넓히려다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황무지나 다름없던 구릉지 신천·신암·효목동은 새로운 황금시대로,
개발에 포함된 수성·범어·만촌 들판마저 땅값이 들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