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시멘트는 '건설의 감초'.
도로, 주택, 공장 등 건설 현장마다 시멘트가 부족해 물건을 받으려는 화물차들이 줄지어 며칠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공장 옆엔 전용 비행장에 농구장 축구장 기생집도 생겨났습니다.
한창일 땐 종업원이 500여 명, 인근 협력 업체까지 더하면 1천여 명에 달해
무명의 한촌(寒村)이던 신기 들판은 근대화를 이끄는 공업지대로 탈바꿈했습니다.
진보로 통하는 길을 뚫는다고 이유백 파천면장부터 어린 아이까지 지게로 꼬박 나흘간 돌을 날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