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 모음 바로가기
▲ 1973년 7월 27일, 계속된 가뭄에 '하천으로 시장을 옮기면 비가 온다'는 속설에 따라 경북 영천읍 문외동 5일장이 영천교 아래 금호강 백사장으로 옮겨와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영천교 너머로 창대서원(기와 건물)이 보인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7월 27일 경북 영천군 영천읍 금호강. 백사장 땡볕에 난데없이 5일장이 섰습니다. 6월 중순부터 계속된 가뭄에 논에 모가 타들어 가, 곳곳에서 올린 기우제도 모두 허사. '장터를 하천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 는 속설에 급기야 관·민이 함께 문외동 시장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 1992년 6월 30일, 경북 금릉군(김천시) 구성면 용호리 주민 50여 명이 마을 뒤 홈디못 제방에서 기우제를 올리고 있다. 이날 기우제 끝에 한줄기 소나기가 내렸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62년에도, 68년에도 시장을 옮기자 우연인지 비가 왔다". "영천 시장을 옮기면 일주일 내 틀림없이 비가 온다". 노인들은 여부없이 효험을 장담했습니다. "이럴 시간에 한줌이라도 강바닥을 파는 게 더 낫겠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시큰둥했습니다.
▲ 1973년 7월 계속된 가뭄에 달성군 낙동강변 논바닥이 말라 갈라져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현대 과학 문명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군민들의 요구가 심해 도리 없었다" 영천읍장은 장터를 옮겨 놓고도 내심 속이 탔습니다. 그런데 또 우연일까, 지성이면 감천일까? 이날 오후 3시쯤 마른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 1977년 7월 30일 대구 상동 경로당 노인회(대표 김팔출·72) 회원들이 3일간 목욕재계 후 봉덕동 앞산 능선에 올라 음식을 차려 제를 올린 뒤 솔가지 더미에 불을 지피며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같은 시각, 28km 떨어진 경주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날은 황남동 155호분(천마총) 발굴 현장에서 금관을 꺼내 올리던 날.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이변이었다…." 당시 조사단원 이었던 윤근일 전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 1978년 6월 7일, 가뭄이 계속되자 대한노인회 경북도지부 대표 50여 명이 3일동안 목욕재계 후 대구 앞산 대덕 산정에 올라 제물을 차려 놓고 기우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정말 효험이 있었던 걸까. 금호강에 장이 선 지 사흘 뒤인 30일, 새벽부터 흠뻑 비가 내렸습니다. 이날 오전 12시 현재 영천 강우는 37mm. 의성·경주·경산·선산·칠곡·성주 군위 등엔 50mm 안팍으로 흡족하게 내려 완전 해갈을 봤습니다. 이런 연유로 영천에선 가뭄이 들면 으레 시장을 옮기곤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비가 왔습니다.
▲ 1977년 7월, 가뭄이 계속되자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 냇가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새끼줄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1976년 7월엔 9일(강수량 14mm) 하루 빼고는 비 다운 비가 없어 8월 2일 금호강에 장이 선 다음날 46mm나 왔습니다. 가뭄이 혹독했던 1977년에는 6월 중순부터 비 구경을 못해 7월 17일,또 영천장을 강변으로 옮겼더니 이날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20.1mm가 내렸습니다.
▲ 1977년 7월 27일, 성주군 벽진면 가암1동 부녀자들이 새벽에 목욕재계 후 마을 앞 냇가 이천에서 키에 물을 담아 까부르며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그해 성주에선 보기 드문 '키 기우제'가 열렸습니다.7월 27일, 벽진면 가암1동 부녀자들이 목욕재계 후 모인 곳은 마을 앞 냇가 이천(利川). "용신님 제발 비를 내려 주소서" 아낙네들은 저마다 키에 물을 담아 까부르며 빌었습니다. (매일신문 1973년 7월 29일, 1976년 8월 4일, 1977년 7월 19일·29일 자)
▲ 1980년 초까지 합천군 봉산면 일대에서 성행했던 방아다리 뱅이 기우제. 부녀자들이 이웃 마을에서 훔쳐 온 방아다리를 하천에 거꾸로 세워 놓고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매일아카이빙센터
합천 일대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디딜방아 뱅이 기우제’가 성행했습니다. 부녀자들이 이웃 마을 디딜방아를 훔쳐 냇가에 거꾸로 세우고는 월경때 피가 묻은 속옷을 걸쳐 놓고 비를 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음양의 원리를 이용한 기우제의 극치였습니다. 연기를 피워 하늘로 올리는 행위도 실은 같은 이치였습니다. 옛날부터 가물 때면 시장을 옮겼다는 사시(徙市). 신라 진평왕 때도 큰 가뭄이 들어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빌었다고 합니다. 그 기저에는 음양(陰陽)사상 이 있었습니다. 용왕이 사는 하천(음)에 장을 세워 시끌벅적하게 하면 하늘(양)의 용신이 감응해 비를 뿌린다는 것. 키의 모양새는 용의 꼬리. 하천에서 용이 꼬리치듯 부녀자들이 키를 까부르면 하늘의 양기가 발동해 비를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 1973년 7월 27일 영천 금호강 백사장에 들어선 5일장(위)과 2024년 7월 26일 같은 장소에서 본 영천 금호강과 시가지. 51년 전 영천장이 섰던 강변에는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영천은 비가 적게 내리기로 이름난 곳. 그래서 저수지(정부 누리집 2023년 8월 기준)가 무려 985개.경북 전체(5천4개)의 19.6%가 영천에 몰려 있습니다.1956년 제2 탄약창이 영천에 들어선 것도, 1996년 천문대를 영천 보현산에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올해처럼 무섭게, 장마가 입추(8월 7일)가 지나도 계속되면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발 해를 보게 해 달라고 또 빌었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한없이 약한 존재였습니다.
1973년 금호강에 옮긴 영천 5일장 & 기우제
김태형 매일아카이빙센터장 / 편집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