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시리즈 모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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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동 경북도청과 경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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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2월 24일 대구 중구 포정동 21번지 경북 도청사.

늦겨울, 한줄기 봄비가 청사 마당을 적시고 갔습니다.
이제 4월 1일 이면 산격동 신청사로 이전할 터.
곧 헐릴 건물이니 다듬지도, 가꾸지도 않아 더 을씨년스럽기만 합니다.

경상감영이 자리한 이곳은 1896년부터 사실상 경북 도청 소재지였습니다.
1895년(고종 32년) 관제 개혁으로 조선 8도가 13도 체제로 재편되면서 경북의 정치,행정 중심지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선화당 등 관찰사 건물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1912년 일제강점기에 선화당 동편에 목조로 도청 본관을 신축했습니다.
7년 뒤엔 본관 동편 청사를, 또 3년 뒤엔 서편에도 건물 올려 ㄷ자형 도청사가 완성됐습니다.

#포정동 경북도청과 경찰국 건물 (현 경상감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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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동 경북도청부지에 세운 뇌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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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동편 앞 건물은 뇌경관(賴慶館).
서양식 석조 2층 건물로 대구 최초 컨벤션센터, 상품진열소였습니다.

일본 다이쇼(大正) 천황 즉위(1912년) 기념사업으로 1915년에 준공됐습니다.
준공식 날 이곳에선 일본 국가가, 천황 폐하 만세 삼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해방 후 1950년대 들어서는 콘크리트 건물인 도 경찰국과 부속시설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일제 강점기땐 순사, 이 무렵은 곤봉에 총을 맨 경찰이 그렇게도 무섭던 경찰국가….
경상감영의 노른자, 선화당 앞마당을 당차게 차고 앉았습니다.

#포정동 경북도경찰국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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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이전을 앞둔 1966년은 '일 하는 해'.

굶지 않게 잘 살아보자고, 근대화로 손발이 바빴습니다.
늘어난 책상, 쌓이는 서류함에 사무실은 꼬불꼬불 미로가 됐습니다.
선화당 마저 커튼을 드리운 채 회계과 직원들로 북적였습니다.

뇌경관도 도리 없이 1층은 도 교육위원회에, 2층은 시립도서관으로 내줬습니다.

"소녹지대를(정경운 청구대 건축과 교수), 관광시설을(김중화 청구대 기계과 교수),
시민 휴식처를(김종환 대구시 건설국장), 종합문화센터·시립도서관·시립수영장을…."

1966년 2월 25일자 매일신문엔 도청 후적지 개발 묘안이 봇물을 이뤘습니다.

결론은 숨쉴 공간, '공원'이었습니다.



▼ 포정동 경북도경찰국 행사 ▼

#포정동 경북도청 앞마당 경찰국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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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동 경북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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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격동 신청사로 이사 전 포정동 경북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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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동 경북도청 신청사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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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동 신청사로 이전 후 포정동 경북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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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동 중앙공원(현 경상감영공원)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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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월 26일, 마침내 중앙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어른 30원 아이는 10원 입장료에도 줄을 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원을 만들며 감영 유적 선화당, 징청각 만 남기고 싹 들어냈습니다.
도청 건물도 이때 헐렸습니다.
철거비 외 유리창과 전나무 목재 질이 좋다고 쳐준 몸값 3백만원에 팔렸습니다.

포정동 도청사는 이렇게 임종을 맞았습니다.
신축 53년 만입니다.

#포정동 중앙공원 개장 직후 모습 (현 경상감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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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치욕을 고스란히 치른 곳.
2·28의거 학생들이 곤봉을 마다하고 중앙통을 달려와 정의를 외치던 곳.
마침내 4·19 혁명 시민들이 목 놓아 승리의 함성을 울렸던 곳.
또 박봉을 마다하고 나라 일꾼들이 근대화,산업화를 맨몸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곳….

건물이 사라지니 역사도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이곳엔 경상감영 복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달성공원으로 피란 간 관풍루도 머잖아 되돌아 올 예정입니다.
포정동 도청 71년(1896~1966) 역사도 소중한 유산.
지금은 한 점 흔적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빛바랜 필름에서 찾은 1966년 포정동 마지막 경북 도청사.
파월장병을 돕자는 담벼락 게시판에서 시민들은 아직도 발길을 떼지 못합니다.

빛바랜 필름에서 찾은
1966년 대구 포정동 경북도청